공간이 뇌에 주는 영향 연구하는 신경건축학 각광
미국의 LA타임스는 지난 16일자에서 "미국 기업의 직원 1인당 사무공간이 1970년대 46~65㎡(14~20평)에서 최근 18㎡(5.4평)로 줄었다"고 전했다. 소통을 강조하는 분위기, 개인 IT기기의 발달, 그리고 기업들의 경비절감 노력이 그 변화의 원인이라는 것.
하지만 미국 기업 사무실의 천장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세기 내내 평균 2.4m였던 천장 높이는 1990년대 후반 2.7m로 높아졌고 최근 신축 중인 빌딩들은 평균 3m 수준이다. 면적은 줄이되 층고는 높이는 미국 기업들의 모순적인 공간배치. 이 속엔 '뇌 과학'이 숨어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조안 마이어스-레비 교수는 천장 높이가 각각 3m와 2.4m로 다를 뿐 구조는 똑같은 두 방에 100명을 나눠 넣고, 동일한 문제와 퍼즐을 풀게 했다. 그 결과 높은 천장 아래서 문제를 푼 사람들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반면 낮은 천장 쪽 사람들은 정해진 범위의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층고를 높인 기업들의 선택은 창의성의 관점에선 건설비를 낭비한 건 아니었던 셈이다. 창의성을 좌우하는 공간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줄리엣 주 교수는 색깔과 창의성의 상관관계를 입증해 보였다. 600명에게 컴퓨터로 퍼즐을 풀게 하면서 문제의 배경색으로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을 사용했다.
그 결과 빨간색을 보고 문제를 푼 그룹은 기억력과 주의력이 필요한 단어암기, 철자법 체크 쪽 점수가 높았다. 반면 파란색을 보고 문제를 푼 그룹은 창의력이 필요한 조각퍼즐 맞추기 등에서 훨씬 나은 점수를 냈다. 줄리엣 주 교수는 "새로운 상품이나 미래 전략을 기획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 회의실은 파란색으로 칠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간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한 믿음은 건축가의 직관을 넘어 과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예 '신경 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는 신생 학문분야까지 생겼다. 지난 2003년 건축과 뇌과학 분야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탄생시킨 신경 건축학의 목표는 건축이 뇌에 주는 영향을 연구해 최적의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신경 건축학의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건축가나 뇌 과학자가 아닌 '소아마비 백신의 아버지' 고(故) 요나스 소크(Jonas Salk) 박사였다. 미생물학자였던 소크 박사는 1950년대 초 피츠버그 대학의 지하연구실에서 소아마비 퇴치법을 찾고 있었다. 연구가 벽에 부딪히자 그는 기분전환을 위해 이탈리아 중부의 13세기 중세 수도원으로 떠났다. 높다란 기둥 사이를 한가롭게 거닐던 순간 소크 박사는 '사균(死菌)백신'의 영감을 떠올렸고, 결국 소아마비 정복의 길을 열게 됐다.
인간의 영감을 끌어내는 건축의 힘을 체험한 소크 박사는 이후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과 함께 태평양이 내다보이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해안 언덕 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예술적인 생물학 연구소를 지었다. 소크 박사의 요구는 "파블로 피카소가 감상할 정도의 공간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높은 천장과 큰 창, 열린 공간으로 이뤄진 소크 연구소의 풍광은 '생물학계의 보석'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소크 연구소를 무엇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노벨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한 탁월한 지적 성과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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